u파워볼,파워볼실시간,실시간파워볼,1.97배당,파워볼전용사이트,파워볼게임사이트,홀짝게임,파워볼게임,파워볼엔트리,파워사다리,동행복권파워볼,하나파워볼,엔트리파워볼,파워볼사이트,키노사다리,키노사이트,엔트리사이트,파워볼하는법,파워볼분석,파워볼사다리,파워볼,나눔로또파워볼,네임드파워볼,앤트리파워볼,파워볼재테크,파워볼중계,연금복권당첨번호,라이브스코어,스포츠토토,토토사이트,네임드사이트,파워볼결과,돈버는사이트,엔트리게임,파워볼픽스터,사다리게임,파워볼픽,파워볼당첨번호,파워볼구매대행,파워볼게임실시간,파워볼패턴,실시간파워볼게임,파워볼그림,자이로볼,파워볼유출,베트맨토토,배트맨토토,연금복권,나눔로또,파워볼대중소,파워볼예측,파워볼양방,파워볼게임하는법,파워볼게임사이트,하나볼온라인,파워볼메이저사이트,파워볼무료픽,파워볼놀이터,파워볼사이트추천,파워볼주소
파워볼실시간

파워볼분석 엔트리파워볼 파워사다리 추천주소 주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4-03 16:45 조회43회 댓글0건

본문


j7.gif




기숙사생 반발에···학교 측 "출입통제 기간 외출 자제 의미"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서울경제]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잇따라 나온 서강대 기숙사에서 학생들에게 코로나19에 걸리면 책임을 지라는 서약서를 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파워볼실시간

3일 대학가에 따르면 서강대 곤자가 국제학사와 벨라르미노 학사가 최근 기숙사생들로부터 "외출 시 코로나 감염 위험이 있는 장소(PC방, 노래연습장 등) 방문을 삼가고 감염 위험이 많은 장소 방문으로 코로나19에 감염될 경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경제적 손실 및 민·형사상으로 책임질 것을 약속한다"고 내용이 담긴 서약서를 받았다.

이 서약서는 지난달 25일 곤자가 국제학사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후 기숙사생들에게 배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곤자가 국제학사에서는 총 8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서강대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학생들은 서약서에 대해 "인권 침해", "코로나19 확진 책임을 학생에게 전가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일부 학생은 서약서가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작성됐고 제출하도록 강요당했다는 글을 올려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을 졸업생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기숙사 측의 이런 대응은 잘못됐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학교 관계자는 "외부인의 학교 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지속해서 기숙사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기숙사 학생 외출 제한이 불가피했다"며 "학내 확진자 중 음성에서 양성으로 추후 바뀐 경우도 있어 학생들의 경각심을 높이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강대는 곤자가 국제학사와 벨라르미노 학사 사생 전원을 상대로 코로나19 검사를 한 결과 확진자 8명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전원 음성 판정을 받았다며 9일까지로 예정됐던 학교 출입 전면 통제 기간을 5일까지로 단축한다고 밝혔다.

/김민혁 기자 minegi@sedaily.com

▶ 상위 1% 투자자 픽! [주식 초고수는 지금]
▶ 지피지기 대륙 투자 공략법[니하오 중국증시]
▶ 네이버 채널에서 '서울경제' 구독해주세요!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두산 베어스 선수단이 15일 잠실구장에서 훈련을 펼쳤다. 미란다가 캐치볼을 하고 있다. 잠실=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1.03.15/
[잠실=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두산 베어스 아리엘 미란다가 다음주 삼성 라이온즈전 선발 등판을 준비한다. 통증이 있었던 부위는 다행히 말끔하게 나았다.

두산은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KIA 타이거즈와의 정규 시즌 개막전이 우천 순연되면서, 선발 로테이션을 하루씩 미루기로 결정했다. 3일 등판 예정이던 개막전 선발 워커 로켓은 4일 잠실 KIA전에 나선다. 나머지 투수들도 등판 일정이 한 경기씩 미뤄졌다.

4일 KIA전과 6일 삼성전이 정상적으로 열린다면 미란다는 7일 삼성전에 등판할 예정이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미란다는 세번째 선발 투수로 등판을 준비 중이다. 팔 상태가 아무 이상이 없으니 일정대로 가면 될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미란다는 당초 개막전 선발 투수로 내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시범경기 막바지에 왼쪽 팔에 불편함을 느꼈다. 삼두 근육 부위에 미세한 통증을 느껴 며칠 휴식을 취했고, 결국 개막전 등판이 불발됐다. 두산은 미란다 대신 워커 로켓을 개막전 선발로 낙점했다.

미란다는 31일 이천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2군 연습 경기에 등판했다. 3이닝 5안타 3탈삼진 1볼넷 4실점을 기록했다. 총 55구를 던지며 상태를 체크했고, 직구 구속은 142km~149km까지 마크했다. 슬라이더(127~134km)와 체인지업(129~130km), 포크볼(126~130km)까지 골고루 점검했다.

그리고 김태형 감독은 미란다를 2일 발표한 개막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몸 상태에 무리가 없기 때문에 다음주 중 예정대로 등판이 가능할 전망이다.

잠실=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재테크 잘하려면? 무료로 보는 금전 사주

- Copyrightsⓒ 스포츠조선(http://sports.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공 스포츠조선

헤럴드경제
사진=양미라 인스타그램



[헤럴드POP=이미지 기자] 양미라가 동생 양은지가 찍은 아들의 근황을 공개했다.

배우 양미라는 3일 오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주변 지인들이 엄마가 안티냐고 제가 찍은 서호 사진이 젤 이상하대요 ㅋㅋㅋㅋ"라고 전했다.

이어 "그래서 실물과 가장 가깝다는 은지가 찍은 사진으로 올려요. 별차이도 없구만 뭐 ㅋㅋㅋ"라고 덧붙였다.

또한 양미라는 "뭘 해도 내 눈엔 금보. 중국집에서 아기 금보 팬미팅한 날"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번에 함께 공개된 사진에는 양미라 동생 양은지가 찍은 양미라 아들 서호 군의 모습이 담긴 가운데 서호 군은 귀여운 자태를 뽐내고 있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편 양미라는 지난 2018년 2세 연상의 사업가 정신욱 씨와 결혼해 슬하에 1남을 두고 있다. 양미라 부부는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아내의 맛'에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popnews@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POP & heraldpop.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OSEN=광주, 최규한 기자] 26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2021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시범경기가 열렸다.4회초 1사 주자없는 상황 롯데 이대호가 2루타를 날리고 있다. / dreamer@osen.co.kr
[OSEN=조형래 기자] 지난 1일 롯데의 마지막 청백전을 앞둔 부산 사직구장.

만우절의 거짓말 같이 이대호는 배팅볼 투수 자리로 이동했다. 이대호는 타격 훈련 막바지 젊은 선수들이 타격 훈련을 할 때 배팅볼 투수로 기꺼이 나섰다. 이대호가 던져주는 배팅볼이 타자들의 구미에 맞았는지 타구들이 외야로 제대로 뻗어나갔다. 올해 1군 선수단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고 잠재력이 터지기를 기대하고 있는 자원들의 경쾌한 타격음이 들릴 때마다 추임새를 넣으며 기를 불어넣었다.

외야수 김재유는 이대호의 배팅볼로 3개 연속 홈런 타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훈련을 모두 마치고 덕아웃으로 들어올 때 후배들은 꾸벅 인사를 하며 배팅볼을 던져준 최고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외국인 타자 딕슨 마차도 역시 이대호를 향해 “땡큐, 리! 나이스 BP”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대호는 구단을 통해 “아주 가끔 배팅볼을 던지곤 한다. 개인적으로 타자지만 공을 던지는 것도 몸의 밸런스를 잡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즌을 앞두고 밸런스 체크를 위해 공을 던졌다”면서 “또 코치님께서 우리 선수들 위해 그동안 공을 많이 던지기도 해 오늘은 내가 나섰다. 내 공을 친 후배들이 올해 잘쳐줬으면 하는 마음이다”고 소감을 전했다.

기사 이미지
메이저리그에서 정상급 커리어를 쌓은 뒤 SSG 랜더스로 복귀해 모든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1982년생 친구 추신수에게 모든 관심이 쏠릴 때, 이대호는 후배들을 음지에서 지원하며 자신의 커리어 마지막 2년을 조용히 준비하고 있다. 이대호는 올 시즌을 앞두고 롯데와 2년 26억 원의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을 맺었다. 고향팀에서 마지막 2년을 우승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쏟아부을 각오를 하고 있다.
지난해 144경기 전경기 출장해 타율 2할9푼2리(542타수 158안타) 20홈런 110타점 OPS .806의 기록으로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도 준수한 기록을 남겼다. FA 계약을 앞두고 이대호의 적정 몸값, 생산성 논란, 그리고 선수협 회장직을 맡으면서 불거진 의혹으로 홍역을 치렀다.

논란들이 있었지만 선수로서 커리어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 빅리그 커리어가 대단한 추신수 역시 이대호를 향해 “엄청난 커리어를 쌓은 선수이고 야구를 정말 잘한다고 생각한 선수”라고 말하기도 했다. 추신수가 미국에서 성적을 쌓았다면 이대호는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가 인정할 만한 업적을 만들었다. 이대호도 추신수 못지 않게 올해를 기다리고 있고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이대호에게 남은 것은 롯데의 우승이다. FA 계약을 하면서 매년 우승 인센티브 1억 원씩을 포함시켰다. 이대호의 우승을 향한 의지이기도 하다. 선수단 역시 이대호의 우승 열망에 동화되어 캠프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3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리는 개막전에서 이대호와 추신수는 모기업들의 라이벌 구도의 중심에서 맞대결을 펼친다. /jhrae@osen.co.kr

[OSEN=잠실, 이대선 기자]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21년 KBO리그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의 시범경기가 열렸다.7회초 1사에서 SSG 추신수가 좌중간 안타를 치고 유서준과 교체되고 있다. /sunday@osen.co.kr


[관련기사]
☞ 샤론 스톤 "감독에 속아 노팬티"→"친조부에 성추행"
☞ 무속녀 “임신 중 부부관계 원하는 남편 막으려 부적"
☞ '박수홍 돈 100억 횡령' 친형 부부, 미국행 NO
☞ 이상민, 前아내 이혜영 언급한 이수근 따귀
☞ 함연지, 신혼여행 때 1박 수백만원 초호화 리조트
김포군 고촌공소 송해붕의 죽음.. 야학 열었다 지역유지들이 모함
[오마이뉴스 박만순 기자]




▲ 고촌 제자들과 강당 앞에서 송해붕 선교사.
ⓒ 박만순

1952년 7월. 14세 소녀 송해숙은 천주교 선교사였던 오빠 송해붕의 시신을 찾기 위해 천등고개를 올랐다. 경기도 김포군 고촌면(현재는 김포시 고촌읍)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1km 가니 천등고개가 나왔다. 높지는 않은 곳이지만 한여름이라 일행들의 얼굴은 땀으로 번질거렸다.
김포 천등고개에서 숱한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문은 진작 있었지만 학살 당시인 1950년 10월에는 시신을 수습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빨갱이가 죽어 묻혔다는 인식에다 고촌지서의 감시 때문이었다.파워볼게임

그날 송해숙 가족과 천주교 고촌공소 신자, 송해붕의 제자 약 200명이 시신 수습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지난달 재판 덕분이었다. 즉, 1952년 6월 28일 서울지방법원 인천지원의 '송해붕 외 5인 살해 및 사체유기' 재판에서 치안대원 및 고촌지서 순경이 실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송해붕이 불법적으로 학살당했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가족과 관련자 들이 시신 수습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런데 시신수습에는 난관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학살 지점을 명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고촌성당에 묻힌 송해붕 선교사



▲ 선교사 송해붕
ⓒ 박만순

송해붕을 학살해 실형을 선고받은 임OO 등의 치안대원들은 법정에서도 학살 장소를 이실직고하지 않았다. 결국 장소는 확인되지 않았고, 학살지를 찾는 것은 유가족의 몫이 되었다.
일행은 십여 명씩 나뉘어져 천등고개 이곳저곳을 삽과 곡괭이, 가래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송해숙이 있는 곳에서 "아"하는 탄식이 터졌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구덩이에서는 여성으로 보이는 유해가 나왔다. 살은 썩었지만 머리카락, 옷가지 등은 그대로였다. 잔인하게도 머리카락은 전깃줄로 위로 묶여 있었고, 두개골 주변에는 핏자국이 널려 있었다. 주변에는 피가 묻은 돌멩이가 보였다.

고촌지서에서 전깃줄로 머리카락을 위로 묶어 고문을 가하다가 천등고개에서 총으로 쏜 다음 그것으로도 모자라 돌멩이로 머리를 짓찧은 것이었다. 참혹한 모습에 사람들은 모두 입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누구의 시신인지 알 수 없어서 수습을 하지는 않고 다시 흙으로 묻었다. 이후에도 여기저기서 시신이 발견되었지만 송해붕의 시신은 나오지 않았다.

한나절(약 4시간)쯤 지났을 때 "여기 선교사님이 있어요!"라는 외침이 터져나왔다.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모여든 곳에는 구덩이가 있었는데 그 아래로 신학생복이 보였다. "오빠", "요한아", "선교사님"을 외치는 목소리가 동시에 터졌다. 요한은 송해붕의 세례명이었다. 송해붕의 윗주머니에서는 묵주가 나왔고, 평소에 찼던 허리밴드도 그대로 있었다. 2년 가까이 천등고개에 묻혀있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1950년 10월 12일 새벽 0시에 학살된 시신이 세상의 빛을 본 때는 1952년 7월경이었다. 이날은 시신을 인근에 가매장했는데 경황이 없어 시신 매장지를 미리 마련하지 못한 탓이다.

송해붕의 유해가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56년 6월 15일의 일이었다. 계양 선산으로 이장을 하던 날, 소복을 입은 여성과 천주교 고촌공소 어린 제자들이 뒤를 따랐다. 하관미사를 때 송해붕의 부친 송희진은 십자가를 붙잡고 있었고 참석자들은 통곡을 했다. 이후 송해붕의 유해는 1999년 4월 김포성당 묘지로 이장했다가 2004년 3월 9일 고촌성당 동산에 이장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고촌성당 내에 있는 송해붕의 묘
ⓒ 박만순

인민군 사격연습했는데...
경기도 김포는 3.8선 접경지역으로 전쟁 3일 만에 북한군에게 함락됐다. 마을에 들이닥친 인민군들은 집집마다 다니며 밥을 해달라고 했고 부상당한 군인들은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었다. 1950년 7월 인민군은 의용군 모집을 시작했다. "김일성대학에 보내준다"는 말에 자발적으로 참가한 이도 있었지만 적지 않은 수가 강제적으로 끌려갔다. 송해붕의 동생 송해용(1929년생)은 후자의 경우로, 7월 10일 강제로 끌려갔다.

동생이 끌려가자 송해붕은 천주교 고촌공소 강당 옆에 굴을 팠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된 송해붕은 밤에는 산언덕 콩밭으로 가 바위틈에 숨어 잠을 잤다. 또 송해붕은 김포군 양촌면 누산리로 피신을 하기도 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자 선교사였으며 김포군 고촌공소 창립자였던 송해붕은 자신의 신앙에 비추어봤을 때 북한군에게 협조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1950년 9월 말 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 후 서울 탈환 전투를 벌일 즈음 송해붕은 고촌의 한 굴에 있었다. 송해붕의 5촌 조카 송영식의 증언이다.

"인공 때 동네 수수밭에서 국군이 버리고 간 MI 총 세 자루와 칼빈 총 한 자루를 주웠어요. 공깃돌(小石. 송해붕의 아호) 선생한테 그 말을 했더니, 고촌으로 가지고 오라고 하더군요. 나는 그것을 대빗자루 만드는 대싸리 잎새 사이에 잘 숨겨가지고 걸망으로 메고 갔지요. 지름길로 가면 빠르겠지만 일부러 한적한 길로 돌아서 갔어요.

선생님은 그 총으로 제자 몇을 데리고 굴속에서 사격 연습을 하셨지요. 국군들이 일선에서 싸우고 있으니, 우리도 후방에서 싸울 수 있으면 싸우도록 준비를 하자는 거였어요. 그런 분이 웬 공산당입니까? 환도 후 너무 억울하니까 그냥 있을 수 없다며 당숙 댁에서는 임○○ 씨 등을 상대로 재판을 걸었지요.(안영, 『스물넷, 못다 사른 불꽃』)"

천주교 신자(황〇〇)의 집 벽장에 숨어 낮에는 굴에서 사격연습을 하던 송해붕은 1950년 10월 10일 오후 3시 치안대에게 발각되어 끌려갔다. 고촌면사무소 양곡창고에 구금되었는데, 그곳엔 이미 수십 명이 있었다.

창고 안은 연일 비명소리로 아우성이었다. 송해붕의 제자 임병열도 연행됐다가 창고 안에서 송해붕을 만났다. 임병열은 치안대원과 지서 경찰들에게서 "송해붕을 따르지 마라"고 강요당하며, 창고에서 3일 동안 거꾸로 매달리는 고문을 당했다. 그는 다른 주민들이 전깃줄로 손이 묶인 채 거꾸로 매달려 물고문을 당하는 것도 목격했다.(진실화해위원회,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그렇다면 송해붕은 치안대에 왜 연행됐을까? 당시 치안대와 경찰은 송해붕이 '고촌면 면장 암살을 기도하고, (고촌면 천주교) 신자에게 적기가 등을 가르쳤다며 그가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했다.(1952년 6월 28일, 서울지방법원 인천지원 형사합의부, <임OO 외 판결문>, 형공 제351호)

하지만 송해붕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고 인민군을 상대로 교전도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그는 또 수복하는 국군을 환영하려 제자들과 감자로 태극 문양을 만들어 태극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송해붕이 치안대에 공산주의자로 밀고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기존에 개신교를 믿던 고촌면의 한 성씨 지도자들(지역 유지 그룹)은 6.25 전부터 천주교 선교사였던 송해붕을 질투하고 질시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송해붕의 야학과 선교에 관심을 갖고 지역의 지도자로 받들자 그들은 송해붕을 제거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송해붕을 학살한 이들은 훗날 재판을 받고 실형까지 선고 받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1951년 연합국 일원이었던 벨기에 군인들이 계양초등학교 운동장에 주둔했다. 이들은 학교에서 군종신부 주관으로 미사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송해붕 선교사 사건을 접하게 됐다.

사병 조지가 이 경악스러운 이야기를 군종신부(중령)에게 전했는데 이후 군종신부는 고촌지서와 김포경찰서에 가 항의하고 조사를 촉구했다. 군종신부는 송해붕의 가족에게 경찰서에 진정을 넣도록 권유했다고 알려졌다. 이렇게 해서 가족은 진정서를 제출했고 인천지검이 정식으로 기소해 형사재판에 이를 수 있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배움터 열어

송해붕은 계양국민학교와 인천공립직업학교를 졸업한 후 성직자의 길을 가기 위해 1944년 원산 덕원신학교에 입학했다. 여기에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당시엔 신학교에 입학하려면 해당 교구 주교의 추천서를 받아야 하는데, 노기남 주교는 송해붕에게 "너는 장남이고 가계를 이어야 하니 취업을 하라"고 했다. 성직자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던 송해붕은 경성(서울) 명동성당 주교관 앞에서 다섯 시간 무릎 꿇고 있었다. 다음날 노기남 주교는 송해붕의 부모를 만나 최종 허락했다.

하지만 신학교에서의 배움은 쉽지 않았는데 라틴어가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됐고, 방학이라 집에 왔던 송해붕은 3.8선이 그어지는 바람으로 신학교가 있는 원산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결국 송해붕은 성직자가 아니라 천주교를 전파하는 선교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그는 계양면 굴현리에서 야학을 시작했는데 1949년에는 고촌에 공소강당 겸 야학교사를 건립했다. 그의 열정은 주민들을 감화시켰고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천주교의 문을 두드렸다.

"억울하게 죽은 오빠, 복자가 되기를"

1997년 7월 김포군 고촌성당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한 차동엽(노르베르또) 신부는 50년 전 고촌 토박이들에게 신앙의 씨를 뿌렸던 스물네 살 청년 송해붕을 알게 됐다. 고촌 어느 마을을 가던 송해붕, 송해붕 하는 것이었다.

송해붕은 고촌 사람들에게 가톨릭 신앙을 전파한 죄로 스물네 살에 천등고개에서 공산주의자로 몰려 순교했다. 차동엽 신부는 송해붕 선교사를 복자(천주교에서 공경할 만한 성도에게 붙이는 존칭)로 추대(시복)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쉽지 않았다. 성직자가 아닌 일반 신자가 복자 자리에 오르는 것은 드물었다. 시복은 교황이 신앙이나 순교로 이름 높은 사람을 복자품(福者品)에 올리어 특정 지역의 교회에서 그를 공경하도록 선언하는 것을 말한다.

송해붕의 여동생 송해숙(85세,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은 "오빠가 복자가 되고, 나중에는 성인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쟁 때 억울하게 죽은 송해붕이 진실규명되긴 했지만 한 발 더 나아가서 역사의 순교자로 자리매김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파워볼사이트

Copyrights ⓒ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